더티 워크

🔖 문제의 진짜 원인은 플로리다주의 주민들이 딱 그 정도의 비용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립 교도소를 가득 채우고 싸게 운영하다가 그로 인한 불쾌한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면 분개하고 비난했다. "이곳의 진짜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죄수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커티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도적이고 관대한지 유창하게 떠들어대다가, 교도소 문제에 이르면 그럴 돈이 없다고 말한다."

🔖 이처럼 교도소의 더티 워커, 나아가 모든 더티 워커가 담당하는 또 하나의 필수 기능은, 그들로서는 결국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비인도적인 시스템에 대한 비난을 받아내는 것, 그럼으로써 그들보다 훨씬 더 힘센 사회적 행위자들이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힘센 행위자가 누구인가 하면, 그들의 윗사람만이 아니라 국민의 포괄적인 동의하에 일하는 판사와 검사, 선출직 공무원이다. 데이드의 교도관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교도소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회의 대리인이다.

🔖 갈런드는 일상적인 폭력과 고통은 은밀하게 수행되거나 위장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시야에서 제거되면 용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잔인성의 정도가 아니라 잔인성의 가시성과 형식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들의 외딴 위치는 우연이 아니다. 프래트에 따르면 서양 세계 전역에서 "문명화된 감옥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시스템의 폭력을 은폐함으로써 '선량한 사람들'이 담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훨씬 더 쉽게 모르는 척하거나 잊을 수 있게 하는 감옥이 문명화된 감옥이다.

🔖 여기서 셰이는 호메로스의 전쟁 서사시 《일리아스》 를 재해석하여 베트남전 귀환병들을 괴롭히는 상처의 성격을 탐색한다. 저자에게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인격이 무너지는 이야기"다. 상관 아가멤논이 그가 생각하는 '옳음'을 배반하는 순간, 아킬레우스는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그른 일을 스스로 하겠다"는 욕망을 품는다. 이런 종류의 환멸은 총에 맞거나 전우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만큼 깊은 외상을 남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셰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베트남전 귀환병들과의 작업을 통해 굳게 믿게 된 바, 도덕적 외상은 모든 전쟁 외상의 핵심이다. 귀환병은 민간인 생활로 돌아오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옳음'이 위반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공포와 두려움, 비탄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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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클리니컬 사이콜로지 리뷰Clinical Psychology Review》의 한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은 이 개념의 초점을 확대하여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괴로움까지 '도덕적 외상'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병사들은 전쟁의 혼돈을 헤쳐나가는 와중에 제 손으로 잘못된 행동을 함으로써 혹은 타인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자기 자신을 배반할 때 도덕적 외상을 입고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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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이드 교도소에서 인터뷰한 모든 상담사가 자신이 목격했으나 막을 수 없었던 끔찍한 일 때문에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로비타 리처드슨은 재소 자가 의자에 묶인 채 곤봉질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개입하여 그를 돕지 않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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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도덕적 외상은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과 관계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산업재해다. 더티 워크를 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산업재해를 당한다.

🔖 분명히 드러낸 것은, 드론 부대의 '조이스틱 전사들'은 전쟁터에 직접 나가 죽음을 무릅쓰는 진짜 병사들보다 덜 명예롭고 덜 용감하다고 여기는 군부와 사회 전체의 시각이었다. 또한 드론 전투원의 열등한 지위는 다름 아니라 정치가와 대중이 드론 전투를 옹호하는 바로 그 이유(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무릅쓰지 않고도 외국 땅에서 치명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아이러니가 한층 분명해졌다. 원격으로 사람을 죽이는 드론 조종사는 수천억 달러와 수천 명의 목숨이 낭비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 이후, ('우리 편'에 대해서만큼은) 인명 피해와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기를 바라게 된 이 사회의 대리인일 뿐이다.

🔖 교육받을 기회와 일자리가 비교적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곤경이 누가 군인이 되는가를 강제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럭저럭 괜찮은 여러 일자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야 유급 복무라는 선택지가 그 사람의 제한된 선택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선호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 희생의 분담에서 면제시켜주는 것은 그저 부당한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가난한 시민들을 자기 대신 싸우게 하고는 그 전쟁과 거리를 두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M. 케네디도 샌델과 비슷하게 현재의 시스템이 대리 복무자를 고용하던 남북전쟁 시스템과 얼마나 다른지 묻는다. "군 복무의 그 어떤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은 압도적 대다수의 미국인은 사실상 그들의 동포 중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가장 위험한 사업에 고용해놓고는 본인들은 피 흘리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 역설적이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더티 워커가 느끼는 공모 의식과 죄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해리엇이 침묵한 가장 큰 이유는 교도관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서, 또는 해고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것은 충분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 이유가 충분히 정당한가? 해리엇은 그 답을 알 수 없었고, 자신이 시스템의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줄곧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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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 달리 폭행 사건을 고발했다가 해고당한 맬링크로트는 환자를 위해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경제적 사정보다 우선시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칙을 고수하는 이 훌륭한 입장은 의료윤리학계와 인권운동 진영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맬링크로트는 그런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위험을 덜 무릅써도 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독신자였고, 해리엇처럼 안전망 없이 어린 자식을 부양하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해리엇을 비롯한 여러 상담사들은 경제적 곤궁에서 비롯된 모순된 충동에 시달리면서 더 조심스럽게 데이드의 회색지대 안에서 길을 짚어나가야만 했다.

🔖 그러나 마이클 폴란이 주장하듯이 이 저렴한 가격 뒤에는 일련의 대가가 숨어 있다. 환경(축산업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중 하나이며 삼림 파괴와 수질 오염의 주요 원인이다)과 공중보건 (심장질환 발병률 상승,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약물 저항성 감염증)이 그 대가를 치른다. 또한 살아 있는 동물이 그 대가를 치른다. 아무리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공장식 농장과 정육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한다면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 (2006)에 이렇게 썼다. "다른 어떤 나라도 식용 가축을 우리처럼 집중적으로 또는 야만적으로 사육, 도축하지 않는다. 역사상 그 어떤 민족도 자신이 먹는 동물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산 적이 없다."
이 먼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이자 심미적인 거리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닭다리는 이 시스템 의 잔인성을 감추는 무색무취의 포장재에 들어 있다. 뼈가 없는 햄버거 패티, 빵가루를 입힌 치킷너겟 같은 식품은 아예 고기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만드느라 동물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러한 욕망에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문명화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이 은폐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도축을 예로 들었다. (...) "고기 요리가 동물을 죽이는 행위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상기시키지 않는다는 새로운 규준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고기 요리는 많은 경우 조리와 절단을 통해 동물의 원래 형태가 감춰지고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동안 요리의 기원을 거의 연상할 수 없다."

🔖 《노동과 로커보어 Labor and the Locavore》(2013)에서 그레이는 어느 작은 농장의 푸주한에게 왜 그의 손님들은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는 것 같은지 이유를 묻는다. "그들은 일꾼을 먹는 게 아니니까요." 그레이는 이렇게 쓴다. "그가 이어 설명하길, 자기 경험상 고객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자기 몸에 뭘 집어넣을 것인가다. 그러니 농장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그들에게 우선순위가 되지 않는다."
이 대화를 보면 윤리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많은 이가 왜 노동자 복지보다도 식량 생산 체계 내의 동물 복지에 훨씬 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방목' '인도적 환경 인증' 같은 라벨이 붙은 고기를 구입하는 데는 진심이지만, 그런 라벨에 노동자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대화는 윤리적 소비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자신의 건강에,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순수, 즉 항생제를 투여한 고기를 먹지 않는 순수한 상태, 식탁과 몸에서 가공식품을 추방한 순수한 상태에 관심을 쏟지, 적정 임금이나 노동자 혹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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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 소득이 많은 사람에겐 윤리적 소비가 쉬운 일이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푸드 스탬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지 않다. 소비에서 발생하는 윤리 격차는 계급 격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KFC와 월 마트에서 나쁜 고기를 소비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멋진 식당과 홀 푸즈 같은 상점에서 윤리적인 고기를 소비한다. 그런 소고기와 닭고기에 붙은 라벨은 소비자가 스스로에게서 순수함과 미덕을 느끼게 해 준다.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덕은 특권과 한 쌍을 이루어, 부유한 소비자는 공장식 축산에서 벌어지는 불순하고 더러운 관행에 가담하는 기분을 돈으로 떨쳐낼 수 있다. 불순하고 더럽게 생산되는 식품은 미덕, 윤리가 부족한 소비자의 몫이다. 누가 미덕이 부족한 소비자인가 하면, '해체 라인'에서 간을 걸고 내장을 뜯어내며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도축 노동자들이다.

🔖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낙인찍히고 정체성이 손상되어 삶의 기회를 상실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공한 화이트칼라 전문직(투자 은행가를 비롯해 변호사, 로비스트, 테크 노동자)이 권력이 있다고 해서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한 이 비난은 훨씬 덜 뼈아프고 훨씬 덜 파괴적이어서 그들의 소득에, 위상에, 존엄성과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금융 붕괴 이후에도 과거와 다름없이 고액의 상여금을 받은 은행가들은 더티 워커는 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낙인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 한 방법은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미덕을 내보이는 행위가 가난한 노동자에겐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설령 누군가 그들의 직업을 탐탁잖아하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태도로 타인의 비판을 훨씬 더 쉽게 무시할 수 있다.

🔖 앞서 살펴보았듯 드론 부대의 영상 분석가는 파괴된 집, 산 채로 불타는 사람 같은 생생한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그로 인해 심각한 감정적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의 엔지니어는 그런 영상을 접할 일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결과에서 멀리 떨어진 채로,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목적을 가진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놀란이 지적한 대로 그 한 가지 이유는 기술이 특정한 용도 로 설계되었다가 다른 용도로 전용되기가 매우 쉽다는 데 있다. 가령 공장에서 탱크를 만드는 노동자는 그 물건이 어떤 목적에 쓰일지 잘 아는 반면, 코드를 작성하는 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코드는 훨씬 더 유연합니다. 테크업계에서는 원래 A라는 목적으로 구축하거나 설계한 코드를 아주 쉽게 B라는 사악한 목적에 돌려쓸 수 있어요!"
기업은 이 유연성을 이용하여 직원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의 실체를 감출 수 있으며, 잭 폴슨도 그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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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재직 당시 폴슨은 전체론적 기술과 규범적 기술을 구분한 물리학자 어슐러 프랭클린의 연구를 접했다. 전체론적 기술은 장인(도공, 금속 세공사)이 "작업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공예다. 반면 규범적 기술은 작업이 세부 단계로 나뉘고, 일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개개의 임무에만 몰두 한다. 테크업계의 현실은 후자에 속하며, 테크 노동 자는 도덕과는 무관해 보이는 기술 업무에 천착하면서 도덕적 문제는 쉽게 잊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잭의 결론이었다. "우리는 아주 쉽게 구획화됩니다." 그가 말했다.

🔖 그러나 집단으로서의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 책의 서두에 썼듯이 더티 워크의 핵심 특징 한 가지는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초한 노동이라는 것으로, 이들은 궁극적으로 그 결과에 얼마간 만족하기에 이 문제를 아주 깊이는 따지지 않는다. 이 동의는 중요하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태도와 전제가 바뀔 수 있고 실제로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전국의 교도소를 붐비게 만든 징벌적 양형 정책이 지난 10년 사이에 인기를 잃었다. 정신질환자를 교정시설에 몰아넣는 관행은 여전히 용인되고 있지만, 우리가 대량감금의 사회적, 도덕적 비용을 따지기 시작한 지금은 이 또한 바뀔 수 있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태도 또한, 비록 당장은 도축 노동자가 처한 비참한 환경을 문제 삼기보다는 '유기농' 고기를 집착적으로 소비하는 쪽으로 더 기울어 있긴 해도,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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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질서를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가 그렇듯 더티 워크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티 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며, 그 밖에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여러 결정의 산물이다. 그런 결정 중 하나는, 더티 워크가 무고한 사람들과 환경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위해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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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가 《회색지대》에 썼듯이, 억압자가 사후에 의구심과 불편함을 표명하는 것으로는 "그들을 피해자 명부에 올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레비는 억압적인 시스템에서는 누구든 권력에 쉽게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힘없는 사람이 그런 역할을 떠맡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그 하층에서 복무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조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거듭 말하지만 현대 미국에서 부와 소득의 분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더티 워크의 위임까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는 불평등이다. 잘사는 계층은 더티 워크를 다른 사람 에게, 선택지와 기회가 적은 계층에게 떠맡길 수 있음을 잘 알고 그들 자신은 더러운 노동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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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함께, 소리 높여 귀환병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가 마땅히 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